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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7일 구역예배공과)

 

확신은 깨끗한 양심에서 온다.

23:1; 딤전1:19

 

확신은 깨끗한 양심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재판하는 총독과 왕 앞에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확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인데 왜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런 확신 가운데 살고, 어떤 사람은 이런 확신이 없이 사는 것일까? 왜 어떤 그리스도인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돈과 쾌락의 유혹에 초연하고, 권력의 억압과 사람들의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늘 우유부단하고, 자주 넘어지고, 자신이 없고, 기가 죽어 사는 것일까?

많이 아는 사람이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아는 것이 확신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경우가 많다. 신앙적인 체험을 많이 하면 확신이 생길까? 기적적인 하나님의 간섭이 하나님을 확신하기 위하여 필요하지만, 기적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확신의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적을 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경은,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요일3:21)고 말씀한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담대하지만,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담대하지 못하다. 사도바울도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23:1)고 하였다.

 

양심이란?

우리 마음속의 재판관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양심이 나를 판단하고 형벌을 내리기도 한다. 세상의 법정은 외적인 잘못에 대하여만 심판하는데, 양심이라는 재판관은 말과 행동 뿐 아니라 생각과 느낌에 대하여도 심판을 내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은 욕심 많은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그 돈으로 머리가 좋고 가난한 자기의 학비를 대려고 하였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노파를 살해하는데 성공하고 돈을 손에 넣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증거도 남지 않은 완전 범죄였지만, 양심에 가책을 때문에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열병을 앓았다. 죄를 자백하였을 때 비로소 마음에 기쁨과 환희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은 정결한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확신을 주신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소집한 보름스 국회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다. 심문관은 1,500년을 내려오는 교회의 제도와 법보다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 루터를 책망하며 이를 취소하라고 하였다. 이에 맞서 루터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아무 것도 취소할 수 없으며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양심을 거슬러 행동한다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으며 옳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양심을 갈고 닦자.

이런 질문이 생긴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딴에는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하지만 양심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조직 폭력배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에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만 조직을 배신하지는 않는다. 구약 성경의 사울왕은 의로운 다윗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는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 가지고도 양심이 찔렸다. 성경에서도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고 한다. 정말 마음이 깨끗한 것과 자기의 마음의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더러워졌고(1:15) 때로 화인(火印) 맞은 양심(딤전4:2)도 있다. 마치 구리거울에 때가 끼고 녹이 슬어서 자신을 볼 수 없게 된 것과 같다. 화인(불도장)을 맞은 것처럼 감각이 없어진 마비된 양심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참회록이라는 시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여기에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은 깨끗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윤동주 시인도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 우리를 돌아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말씀에 비추어 잘못이 없는지 늘 반성해야 한다. 이게 내 영혼을 살리는 일이고, 교회를 개혁하는 길이다. ‘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한 양심을 위하여 고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양심의 가책 때문에 시달렸지만,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 해방감과 기쁨은 맛보았던 적이 있는가?

 

(2) 나의 기도시간을 생각해 보자.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무엇을 구하는 시간,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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