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소그룹교안(3.15)

by 운영자 posted Mar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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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대학교회 가정 / 소그룹 나눔 2026. 3. 15

 

돌라와 우리

10: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I. 돌라의 초라함 그러나 ...

 

돌라는 성경에 많이 기록할만큼의 승리나 기적이나, 특별한 순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옷니엘처럼 탁월한 용맹을 가진 것도 아니고, 기드온이나, 삼손처럼 성경에 많이 기록될 만큼의 많은 기적들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어나>, <거주했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돌라도 사용하셨습니다.

 

아비멜렉 = 나의 아버지는 <>이다

돌라 = <벌레>

 

II. 시대적 부르심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라는 말씀과 돌라가 연결이 되었을까요?

사사는 그 시대의 전반적인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교만과 자기자랑으로 물들어 있는 아비멜렉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돌라, ‘나는 벌레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 평범한 사람, 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사막수도원운동

고난의 시기가 끝나고 나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대에, 사막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부유함과 안정됨 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순수한 신앙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항상 사막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절대적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우선은 <개인적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반응하면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시대적 부르심>으로 사용하십니다.

 

2. 돌라는 <잇사갈> 사람인데 왜 <에브라임>에 살았을까요?

 

돌라가 등장하기 전, 잔인함과 분열로 하나님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아비멜렉의 주된 활동 무대가 바로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이었습니다. 돌라는 아비멜렉의 교만함으로 엉망이 되어 있는 그곳으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우리의 초라함, 우리의 무능함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다들 부자가 되려는 시대 속에 가난하지만 감사하는, 그래도 행복해하는, 그래서 많이 가지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빈공간에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울림을 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습니다(고후 6:9-10).

 

 

나눔질문

1. 평범하고 작은 사람이 나에게 하나님을 느끼게 해 준 경우가 있으신가요?

 

2. 우리의 평범함과 작음이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고, 서로를 축복해 주며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평범하고 초라하다고 낙심하지

말게 하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암송 11

[말씀]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