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강해 1 (2017.9.10)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by 운영자 posted Sep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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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6:5-15                              주기도문 강해 (2017.9.10)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2017년 우리 교회의 표어이면서, 그리스도인 신앙과 삶의 3가지 범주이다. 사도신경이 우리가 믿어야 하는 12가지 신앙고백이고, 십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법을 요약한 것이라면,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이다.

   한 번은 주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간청하였다.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11:1)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한 것 가운데 가장 올바른 것이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기도의 모범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에 앞서 잘못된 기도 두 가지를 지적하셨다.(6:5-8)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는 위선적인 유대인의 기도와,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 반복적으로 구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 우선 예수님이 지적하신 잘못된 기도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인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인가?

 

   (1) 예수님은 먼저 외식(外飾)하는 유대인들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종교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도이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도를 가르치던 종교전문가들이 기도를 모르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5)

 

   (2) 오늘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교회의 직분자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기도할 뿐 혼자 있을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이나 금식을 자랑으로 여긴다.

     - 추상적인 종교적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기도

     - 공중기도를 통하여 자기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거나 추켜올리는 것 (18:11-12)

     - 기도의 응답을 과장해서 여러 차례 간증함으로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함

 

   (3) 예수님은 우리에게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작은 밀실에서 우리와 만나기 원하신다. 기도시간은 하나님을 만나 그가 주시는 복을 받는 시간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리는 자신이 정화(淨化)됨을 느낀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를 맛보고 그의 인도함을 받는다. 신앙의 인물들은 모두 골방의 기도를 통하여 힘을 얻어 역사를 바꾸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6)


   2. 필요한 것만 구하는 기도인가, 하나님을 믿고 그와 대화하는 기도인가?

 

   (1) 예수님이 두 번째 지적하신 잘못된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이다. 이방인들은 자신의 소원을 반복적으로 간구하면, 저 위에 계신 누군가가 정성을 보고 소원을 들어줄 줄 생각하였다. (*중언부언: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것.)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6:7)

 

   (2)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위하여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대화’(對話)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상대의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며, 더 나아가 그를 좋아하고 그 편에 서게 된다. 하나님과 대화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기도는 나의 소원을 적은 리스트를 일방적으로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맞도록 나를 바꾸는 과정이다. (“나의 품은 뜻 주의 뜻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찬송가 5402)

때로 대화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자아와 하나님의 열심이 격돌할 때가 있다. 성령께서 양심의 가책을 일으켜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도 하고, 나의 미련함을 고쳐주려 하는데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나의 물질과 자존심과 미래까지 하나님께 맡기라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번민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기도 시간에 내 깊숙한 곳까지 침범하여서 내게 싸움을 거신다.

 

   (3) 이방인처럼 자신의 소원만 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8)

 

   * 그러나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늘 아버지만 믿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렇다면 기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①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②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는 분임을 믿고 기도해야 하며, 동시에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셔서 염려를 이기게 하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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